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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깜보 이종식 선교사님 사역지 방문 일지 (둘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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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hine 작성일18-09-07 14:55 조회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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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깜보 이종식 선교사님 사역지 방문 일지​ (둘째날)


Sept. 2, 2018 

 

 

 

7:27am

 

새벽에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바닷가로 갔다. 차를 몰고 10분쯤 달리니 바다가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뿌연 안개가 온 바다를 덮고 있다.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침몰하여 떠내려왔다는 배 한 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해변에 누워 파도를 맞고 있다. 얼마나 많은 젊은 청년들이 희생되고 그 가족의 눈물이 있었을까. 새까맣게 녹슨 폐선의 뼈를 보며 잠시 숙연해진다.

 

돌멩이가 참 예쁘다며 모두 하나씩 들고 즐거워한다. 자연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하나님의 피창조물 중에 변한 건 오직 인간 뿐. 변하지 않은 창조물은 우리 안에 내재된 순수함과 천진함을 마구 꺼집어 내는 위력이 있다. 뒤틀린 고무줄을 도로 풀어주면 제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것처럼 우리들 안에 뒤틀린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 주신 본연의 순수함으로 되돌려 주는 건 오직 말씀과 기도가 아닐까. 암만 바쁘고 복잡해도 그것만은 놓치지 않고 살아야할텐데...

 

숙소로 돌아오니 기어이 남아서 아침상을 준비하겠다는 이영남 권사님이 떡만두국을 해 주었다. (나는 본분을 망각하고 바다를 보러갔다.)

모두 맛있게 먹고 주일 아침 예배를 드렸다.

 

 

Sept. 2, 1pm

 

숙소에서 차를 몰고 15분쯤 가니 연립주택처럼, 똑같이 생긴 집이 한무리 있다. 근래에 지은 주택가인가 보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 동네에 새로 연립 주택이 들어선 그런 모양새다. 집집마다 TV는 있는지 안테나가 달려있다. 지붕 위에는 시커멓고 큰 둥근고무통이 있는데 그건 물통이라고 한다. 집안에 사용하는 물은 모두 이곳에 모아두고 수도꼭지를 설치하여 물을 내려서 쓴다.

우리 밴이 어린이 찬송가를 확성기로 울리며 주택가 앞의 커다란 공터로 들어서니 구석구석에서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온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만 되면 확성기를 들고 나타나던 교회의 언니 오빠들 생각이 난다. 그들은 어린이 찬송가를 크게 틀고는 온 동네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고는 교회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과자랑 사탕, 연필과 공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여름 방학 어느 순간이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뛰어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전도 사역이었나 싶다. 옛날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님은 기성세대 선교도 중요했지만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년을 겨냥하여 학교 설립에 힘을 많이 쏟았다. 미래를 내다보며 초석을 다진 작업이었다. 이종식 선교사님도 이런 맥락이다. 멕시코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지도자를 그리며 2세 전도에 힘을 쏟는다.

U-Haul 처럼 생긴 밴에서 테이블을 꺼내어 펴고 의자를 내려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도 익숙한 듯 몰려들어 하나씩 거들어 금방 간이 예배당이 된다. 올망졸망 모여앉은 아이들을 살펴본다. 동생을 데리고 나온 아이는 동생을 챙기느라 바쁘다. 신발이 없어 맨발인 아이도 눈에 띈다.

 

선교사님이 미래의 목회자로 키운다며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는 열 더댓살의 호세가 앞에 나가서 설교를 하고 아이들을 불러내어 찬양에 맞추어 찬양율동도 한다. 하나 둘 수줍은 듯 앞으로 나가던 아이가 어느새 열명이 넘고. 아이들은 호세의 인도에 따라 율동을 한다. 몇 곡의 노래가 끝나자 호세가 자진해서 나와 찬양율동을 한 아이에게 오레오 쿠키를 하나씩 나누어준다. 봉투를 뜯어 그 자리에서 먹는 아이도 있는 반면 고이 감싸고 쥐고 있는 아이도 있다. 머리가 긴 여자아이 하나가 과자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들어가더니 한참 뒤에 나왔다. 손에는 반으로 줄어든 과자 봉투가 쥐어져있다. 집에 동생이 있을까,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가 있을까. 겨우 여섯개가 들어있는 쿠키를 나누어주고 오는 모습에 마음이 찡하다 황토흙이 잔뜩 묻은 맨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Sept. 2. 3pm

 

다시 짐을 꾸려 10분을 더 달려서 어느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 집의 주인인 할머니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서 딸네 식구는 물론 동네 사람에게 집을 오픈하여 예배를 드린다. 딸 집 아이들은 네 명이 모두 글을 몰라 선교사님이 데려다가 글도 가르쳐주고 말씀도 가르친다고 한다. 선교사님이 기거하는 곳에는 숙소가 여러개 있는데 그 중 몇 곳은 집이 너무 가난하여 보내어진 아이, 공부를 못 시켜서 보내어진 아이들이 위탁 양육되고 있다. 옛날 우리 나라에 주둔했던 미군이 불우아동을 도와주던 모습과 비슷하다. 그 도움으로 훌륭하게 되신 분이 떠오른다. 백악관 교육부 차관보까지 지내신 고 강영우 박사, 상원의원을 지내신 신호범 박사 등이 대표적인 사람이지만 그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내 친구 중 한명도 미군에게 영어를 배워 통역을 하며 다니더니 중학교를 졸업하자 곧 미국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침례교회에서 주선하는 어느 집회에 갔더니 그 아이가 우리는 상상도 못할,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멋진 아가씨가 되어서 본부 목사님 통역을 했다. 먼 세계의 신데렐라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들도 잘 자라서 목사님의 동역자가 되면 하나님을 전파하는 그 지역의 선교사가 되겠지. 어린이 선교의 미래를 보는 마음이 흐뭇하다.

우리 차가 도착하여 의자를 내려 마당을 간이 예배당으로 만들었다. 선교사님과 도와주시는 또 다른 선교사 내외분이 다른 마을로 떠난다. 워낙 깡촌인 덕분에 마을도 뚝뚝 떨어져있고 차도 없어서 일일이 차로 픽업을 다닌다고 한다.

 

거의가 카톨릭 신자인 이 지역에서 여간한 사명과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일행은 의료선교 일정 때문에 모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이 자꾸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들끼리 뭔가 귓속말로 속삭인다. 왜 그런가 하고 돌아보니 내가 입은 티셔츠 때문이다. 어느날 두 손녀와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내게 카메라를 들이밀던 조카가 만들어준 티셔츠다. 사진이 프린트 된 티셔츠를 처음보는 모양이었다. 그림 속의 여자와 내가 같은 사람이라며 손가락으로 티셔츠를 가리켰다가 나를 가리켰다가 한다. 내가 그림을 펼쳐보여주니 손뼉을 치며 신기해 한다. 가지고 간 아이패드도 신기한지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 얼굴을 한 명 한 명 찍어왔으면 좋았을걸 싶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선물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예수님 품에 안긴...

 

Sept. 2, 4pm

 

할머니 집에서 약 30분을 더 달렸다. 사막을 가로질러 꼬불꼬불 산고개를 넘어 도착한 곳은 약 85가구가 모여사는, 유달리 카톨릭 신자들이 많이 산다는 조그만 동네다. 높다란 둔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양철지붕의 길다란 건물이 보건소라고 한다. 미리 보건소장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듯 선교사님이 가더니 보건소장을 모시고 온다. 40대 중반쯤 보이는 후덕하게 생긴 여자다. 의사, 간호사, 약사, 한의사님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가운을 입고 자기 살림을 차린다. 휑하던 보건소 안이 어느새 의약품 냄새를 풀풀 풍기는 병원이 되었다.

30분을 기다리니 소문이 났는지 사람이 모여든다. 류동목 장로님은 입구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접수를 받고 장정호 집사님은 부인 장윤미 집사님에게서 최학선 권사님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너무나 열심히 도우신다.

주민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접수를 받는 류동목 장로님이 약국으로 진료실로 불려들어가기도 한다. 가끔씩 접하는 히스페닉에게서 배운 단어 몇 개 가지고 통역관 노릇을 하고 있으니 출세를 해도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배가 아프다는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가서는 배응구 의사선생님께 "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그냥 소화제하고 비타민을 주면 되겠어요." 해서 한바탕 웃는다. 엉터리 통역에 처방까지 하는 얼렁뚱땅이다.

다행히 동네에서 예배를 마치고 늦게 도착한 이종식 선교사님의 유창한 통역이 있어서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아무 피해(?) 없이 정확한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 다음에 올때는 꼭 통역관이 준비되어야한다는 반성이 있다.

 

그렁저렁 세 시간 가량 진료에 약 40여 명을 보았다.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까닭에 우리의 수고에 비해서 결실이 작다는 반성도 있다. 효율적인 의료선교를 하려면 사람이 더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다.

 

Sept. 2, 11pm

 

11시나 되어서 자리에 누웠다. 모두 피곤한지 금방 잠에 빠져드는데 나는 도무지 잠이 안 온다. 낮에 아이들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저녁밥을 하느라고 냄비를 들고 마당에 들어서니. 우리가 나눠 주려고 가져간 물건을 아이들이 뒤진 모양이었다. 입에 롤리팝을 하나씩 물고 손에는 캔디를 들고 뛰어다녔다.

어제 도착하자마자 마당 한켠에 있는 테이블 위에 신발, , 과자, 학용품 등이 담긴 검정 쓰레기 봉지를 쌓아두었다. 아이들이 손을 대지 않는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아무 생각없이 쌓아두고 다녔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다.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순수하리라고 여겼는데 실망스러웠다. 배반을 당한 느낌이었다.

내가 나타나니 아이들이 깜짝 놀라 캔디를 뒤로 숨긴다. 뜯어진 봉지를 내려다보니 마음이 불편했던지 자진해서 신고(?)를 했다. 캔디를 꺼냈다고 했다. 또 한 아이는 신발을 뒤져서 꺼내었는지 한쪽 발을 들고는 신고 있는 새 신을 보여준다. 새까만 다리 아래로 신발이 유난히 희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니 모두 눈이 똥그래져서 쳐다보았다. “도도 마니하나” (모두 내일). 손가락을 양옆으로 저으며 하는 나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신고 있던 신발을 도로 비닐 봉투 안에 밀어넣었다.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냥 신으라고 할걸. 어차피 그 애들이 가질 것인데. 그러나 내일 그 신발이 그 아이에게 간다는 보장은 없다. 마음 졸이며 그 신발을 탐할 아이를 생각하며 후회를 한다. 도덕성을 가르쳐야한다는 성급한 생각이 어린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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